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슐레지엔 주 (문단 편집) === 근대 이전 === 약 기원전 1세기 무렵에 이미 고대 게르만족이 이 곳에 거주했다는 기록이 남아있었으며 중세 이후로는 슬라브족들이 이곳에 거주했다. 9세기 이후로는 폴란드 왕국의 영토이다가 13세기 무렵부터 소위 [[동방식민운동]]의 물결을 타고 독일인이 대거 유입되면서 서서히 게르만화가 이루어졌다. 상대적으로 독일과 가까웠던 탓에 슐레지엔은 빠르게 게르만화가 이루어져 이미 13세기 후반에 이르면 독일인이 수적으로 우위를 점했다.[* 여담이지만 이 때 유일하게 폴란드인이 수적으로 우위를 점했던 게 바로 개요항목에서 언급한 상부 슐레지엔 일대이다. 이 일대는 이후로도 거의 700년 가까이 폴란드인의 수적 우위가 유지되었다. 특히나 19세기 중후반부터 [[독일 제국]]이 노골적으로 폴란드인을 깔아뭉개고 독일인을 우대했던 것을 생각하면 놀라운 생존력이다.] [[폴란드 왕국]]의 볼레스와프 3세가 왕국을 자식에게 분할상속한 이후 슐레지엔은 슐레지엔계 [[피아스트 왕조|피아스트 방계]]가 지배하는 독립 공국이었다. 동방식민운동을 전후하여 폴란드가 분할 공국 시대에 빠진 틈을 타 [[보헤미아 왕국]]이 슐레지엔에 영향력을 행사하였고, 결국 1335년 [[카지미에시 3세]]는 [[얀 루쳄부르스키]]와 [[트렌친|트렌첸]] 조약을 맺어 보헤미아 왕국에게 슐레지엔을 넘겨주었다. 1526년 [[러요시 2세|루드비크]][* [[헝가리 왕국]]-[[크로아트 왕국|크로아티아 왕국]] 국왕이기도 했다.]가 [[오스만 제국]]을 상대한 [[모하치 전투]]의 패전으로 후사 없이 전사한 후 [[합스부르크 가문]]의 [[페르디난트 1세]]가 보헤미아 왕국의 국왕으로 선출되면서 보헤미아의 일부였던 슐레지엔 역시 [[합스부르크 제국]]에 포함되었다. 하지만 1740년 [[마리아 테레지아]]가 합스부르크 제국을 계승하자 [[오스트리아 왕위 계승 전쟁]]이 발발했고 당시 [[프로이센 왕국]]의 국왕이었던 [[프리드리히 대왕|프리드리히 2세]]는 국사조칙을 파기하여 200년 전 체결된 브리크 조약을 근거[* 브리크 조약은 1537년 슐레지엔 지방의 군소 공국인 브리크 공국과 [[프로이센 왕국]]의 전신인 [[브란덴부르크 선제후국]]의 [[요아힘 2세 헥토어]] 선제후가 맺은 조약인데 주된 내용은 공국의 대가 끊길 경우 영지를 브란덴부르크에게 넘겨준다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당시 형 [[카를 5세]]의 대리였던 [[독일왕]]이자 보헤미아 국왕 [[페르디난트 1세]]가 조약 승인을 하지 않아 효력이 정지되었다. 브리크 공국의 종주국 보헤미아 왕국의 국왕은 1526년 이후로 줄곧 합스부르크 가문의 차지였고 결국 1675년 공국의 대가 끊기자 오스트리아가 합병해 버렸다. [[프리드리히 빌헬름]] 대선제후는 조약을 근거로 오스트리아에게 항의했으나 국력 차로 깨갱 할 수 밖에 없었다.]로 마리아 테레지아의 왕위 승계를 인정하는 조건으로 슐레지엔을 요구하나 오스트리아가 퇴짜를 놓자 곧바로 침공해 슐레지엔 일대는 아수라장이 되었다. 마리아 테레지아의 즉위 직후 기습적인 침공을 감행했던 프리드리히 2세는 성공적으로 슐레지엔 전역을 차지하는데 성공했고, 1742년 무렵이 되면 슐레지엔의 대부분이 사실상 [[프로이센 왕국]]의 영토로 합병되었다. 대찬 여장부였던 테레지아가 그리 쉽게 슐레지엔을 포기할 리가 없었고, 곧바로 반격을 감행하지만 끝끝내 슐레지엔을 수복하는 것에는 실패했고, 1745년 이 일대에 대한 소유권을 포기해야만 했다.[* 여담이지만 [[프로테스탄트]]가 다수였던 하부 슐레지엔 주민들은 내심 가톨릭을 신봉했던 합스부르크 가문의 통치에서 벗어나 프로이센 왕국의 [[호엔촐레른 가문]]의 통치를 반겼다.] 이처럼 슐레지엔을 두고 오스트리아와 프로이센이 수 차례 전쟁을 일으킬 정도로 충돌한 것은 이 곳이 그만큼 알짜배기였기 때문이었다. 슐레지엔은 철과 석탄이 풍부한 지역으로 이를 바탕으로 한 상공업이 크게 발달해서 오스트리아 왕위 계승 전쟁 직전에는 오스트리아 세금 수입의 22%를 책임지는 요충지였다. 오스트리아와 프로이센 모두 도저히 포기할 수 없었던 곳이 슐레지엔이었다.[* 최후까지 오스트리아 영토로 남은 일부 지역은 현재 [[체코]] 영토로 남아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